cinema experience, with space without screen

○ 2019.10.26.~2019.11.1.

○ SRC Ruins,  Space 9, 백지장_지하철, 고가옥탑

내러티브(narrative)와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 결합된영화적인터랙티브설치실험을하는“cinema experience, with space without screen”. 영화와같은이야기가상영관이아닌실제공간에서관람자의움직임에따라전개된다.

VR image

S#1 SRC Ruins
S#2 Space 9
S#3 백지장

‘영화’라는존재에질문을던지다. Cinema Experience VS Interactive Cinema

애초에영화는이미지에새로운차원(dimension)의문제를안고등장했다. 영화에서이미지는일루전(illusion)효과가더해지면서사실성과함께경합을이뤘고, 다큐멘터리나실험영화그리고새로운미디어아트까지자신의영역을확장시켜나갔다. 그리고뤼미에르형제가영화는미래가없는매체라며비관적으로예측했던것과는달리, 현재까지예술과기술의진보와함께그위치를견고하게지켜내고있다. 이러한복잡다양한영화의역사를되짚어거슬러가보면회화나사진까지거론하게된다. 정지되어멈춰진이미지와달리‘영화’만의재현의방법들을굳이따지자면우리는‘움직임을가진이미지’라는본질을지나칠수없게된다. 이미지의움직임에매료된사람들은곧이어시, 공간을새로운차원으로만들어냈고허구의서사를덧입혀관객들에게보는것, 그이상의무언가를전달하는데성공한다. 사실이움직임의예술에서시각적표현자체는불완전한감각이다. 때문에영화에는청각적경험을위한사운드를필요로하고, 여기에사실적으로경험하게만드는배우의연기, 그리고지각적경험을하게되는내러티브의논리를갖춘시나리오를필요로한다. 영화가진화하는동안관객들은항상재현의‘새로움’을보길원했고, 거기에는‘도구’로서차별성을갖춰야하는시도가뒤따랐다. 퓨쳐시네마(future cinema), 입체영화(3D dimensional film)와같은지속적인제안들은그러한예이다. 이렇게영화는2D의차원을넘어서3D, 4D, VR 시네마등과같이새로운차원을제공하며다른공간들을경험하게만들었음을부정할수없다.

때로는영화는프랑스의아벨강스나장뤽고다르와같은앞선감독들에게‘치료’ 혹은‘실험’의도구로쓰여지기도하고, 과거소비에트와독일의어떤집단에게는선전이나사상교육의도구, 또어떤이들에게는자기반영성을드러내는일종의거울로쓰여 지기도 한다.

그렇다면박성준작가에게있어영화는어떤도구인가. 그에게‘영화’는항상질문의대상이자모티프(motif)었다. 즉, 영화가‘무엇’이고, 영화를어떤‘도구’로쓸것인가에대한그의질문은창작의출발점이자오랜숙제였다. 고등학교시절부터단편영화를만들기시작했던그의영화활동은스위스유학을떠나며오랫동안멈춰지다가최근의전시에서다시이어진다. 추측하건대, 박성준작가에게있어영화는보는것(see)과보여주기(show)의차원을넘어서지못하는비관적인매체였기때문에오히려경험(experience)적서사혹은전시에주목했는지모른다. 그것이그가영화를일종의‘올드미디어’라여기고, 또이것을넘어서는‘뉴미디어’에대한관심과조우로돌아선이유가아닐까. 그렇다. 그는여전히‘영화’ 라는이두글자에서벗어나지못하고주변을맴돈다. 이러한까닭에관객(관람자) 역시그의작품을두고‘전시를봤다’라는말대신‘영화적인(cinematic) 전시를경험했다’라는 표현을 하게 된다. 앞서그가전시했던‘MONTAGE’ 시리즈가내러티브와인터랙티브의실험적도구로서쓰여졌다면이번에는영화에대해더욱우호적인입장으로보여진다.박성준작가의금번전시는앞서언급한‘불완전한감각’을채우는데있어관람자스스로가배우가되는일종의연기(acting)를유도한다. 즉이전시는‘영화’를보는것이아닌‘영화’를경험하며감독의디렉팅(directing)을전달받게되는것이다. 흥미롭게도감독(이하: 작가를감독이라대신하여)은이프로덕션현장에직접등장하지않고몇가지미션만남긴다. 관람자(배우)는감독이남긴전화번호로연락을하면, 전화를받는배우와인터랙션(대화)을하게되고, 새로운서사를경험하며이야기를즉흥적으로만들어간다. 이렇게세군데의전시장을이동하며능동적참여를하게되는것이다. 사실그의관심은분명여기에있어보인다. 감독의통제에의해만들어진시각적생산물이TV, 영화와같은스크린에묶여있기때문에, ‘보는것’보다새로운차원의감각을경험하길원하는것이다. 쉽게말해‘시청(watching)’ 하기보다는경험(experience)을원한다는것이다. 주지하듯이영화는감독이나작가가쓴시나리오로진행된다. 이번전시에서주목해야할것은관람자가내러티브를구성해나가는방식이다. 박성준감독의영화적시도는오프닝부터엔딩까지시나리오를정해놓은전통적인영화의방식을가져오되스토리를‘보는것’이아닌‘경험하는것’으로치환시키는데있다. 물론이러한방식은우리가기존의인터랙티브영화(Interactive Cinema)에서이미경험했던것인데, 박성준감독의이러한독특한시도는인터랙션을하는배우와관람자와의대화(dialogue), 예상치못한반응(reaction), 을유도하는연출(directing)에있다. 전시의분위기는공포와스릴러, 블랙코메디장르를연상하게되지만규정짓기힘들고, 픽션과다큐멘터리의혼종적인것, 다큐멘터리에서도다이렉트시네마(Direct Cinema)와시네마베리테(Cinema Verite) 사이의어느경계에서머문다. 이쯤에서필자는그의표방하는영화의스타일이자기반영성과연관지어진다고가늠해본다.
앞서말했듯이장뤽고다르, 알프레드히치콕을비롯해많은작가들과감독들은자기반영성에대한시도를해왔다. 예를들어소격효과(낯설게하기), 제4의벽을허물며스크린을응시하거나관객에게말을건네는방식의거리두기, 재현은모두‘자기반영성’을드러내는공통점을갖는다. ‘낯설게하기’의미학은이렇게은유적사유를유도하게만들며새로운기호와우리를연결시킨다. 여기서만들어진‘거리감’은의미를상실하게하는동시에새로운의미를생성하게하는기능이며, 텍스트자체의힘을더욱강하게만들어관람자를자유로운주체로만든다. 다소복잡하고어려운개념이지만, 간단히말해본질적인것을왜곡하는동시에자유로운해독을확대하며새로운지평을경험하게하는것이다. 이러한전략들중여러방법들과시도가있겠지만대부분의작가들은창작과정중인자신을드러낸다. 혹은장르와형식을허물거나변형시키는방법을통해다른차원(dimension)으로옮겨가게만든다. 같은맥락에서볼때박성준감독은이미이러한‘자기반영성’을재현하는데관심을두고있었다. 전시와영화의경계를허물고규정짓지못하는인터랙티브의구현그자체에서말이다. 그의재현의방식에서도여러가지단서들이있지만필자에게는지난전시<육지것들은절대로믿지말며, 제주에있는사람들에게속마음을말하지말라>를다시언급하고싶다. 우리가관람내내함께했던‘돌’이그것이다. 그리고이번에는‘거울’이다.
특히이번전시에서거울은단순한소품(Props)이나장식의오브제가아닌자기반영성을드러내는장치(dispositif)인것이다. 여기서가장흥미로운점은그의전시에서‘거울’이모든서사를전복시킨다는것이다. ‘거울’은관람자자신이전시를마주하게만들며마치배우의역할을하고있던자신의위치(역할)를바꿔버린다. 쉽게말해‘감독’이‘관객’이되고‘관객’이‘감독’이되는셈이다. 이렇게규정짓지못하게만들며미끄러져나가는방식의전시는점점박성준작가(감독)의스타일이되어간다고느껴진다. 이러한연유로필자는이글을쓰며그에게감독과작가를혼용하게되었다. 이번전시는과거영화의작가주의와태도를두고알렉산드르아스트뤽(Alexandre Astruc)이명명한(Camera stylo)와겹쳐지는전시이기도하다. 어쩌면그의전시를해독하거나비평하는일은관람자에게실례가될지도모른다.‘Cinema Experience’의경험. 그자체가주는힘이가장크기때문이다. / 글김로유